Part 1. 스타트업은 속도가 생명, 그런데 겨울에는?
스타트업은 기존 산업의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에 비해 시간, 돈, 자원, 경험, 지적 재산 등 다양한 측면에서 부족한 상태에서 사업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트업이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무기가 몇 가지 있습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입니다.
기존 기업들은 레거시 비즈니스나 오퍼레이션, 복잡한 의사결정 구조 등으로 인해 빠른 변화를 추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스타트업은 작은 팀 규모로 인해 의사결정 구조가 단순하고 기술 기반의 빠른 실행력을 기반으로 새로운 제품이나 혁신을 만들어낼 수 있는 확률이 높습니다.
지난 2-3년간은 스타트업 업계에 많은 투자금과 인재들이 몰리면서 스타트업의 속도 경쟁에 불이 붙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고 이를 빠르게 실행에 옮길 수 있는 팀이라면 상대적으로 큰 규모의 투자를 받아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사용자를 효과적으로 모집할 수 있는 퍼포먼스 마케팅을 적용하는 스타트업이 늘어나면서 트래픽을 돈으로 사 올 수 있는 공식이 더 명확해졌죠. 큰 마케팅 비용을 태워가면서 적자이지만 빠르게 규모를 성장시켜 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차지하려는 움직임도 많습니다. 우선 많은 사용자를 모아 1위 플레이어가 되고 그 후에 수익성을 개선하면 된다는 공식이었습니다. 쿠팡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올해 글로벌 금융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이로 인해 스타트업 투자 심리는 위축되고 성장의 속도를 높이기 위한 자본 확충은 점차 어려워졌습니다. 투자자들 입장에서도 매출이나 사용자 수가 빠르게 늘어도 적자폭이 점차 커지는 구조를 가진 스타트업에 추가 투자를 하기 어려워진 환경이 되었죠. 이에 따라 현금 흐름이 깨진 스타트업들이 많이 졌습니다. 스타트업은 속도가 생명인데, 이런 겨울이 다가오고 J 커브를 그려낼 수 있는 자본 확충이 어려울 때는 어떻게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을까요?
Part 2 . 겨울엔 겨울에 맞는 전략이 필요하다
스타트업이 가진 시간과 자원은 제한적입니다. 그래서 스타트업에서는 빠른 실행력을 기반으로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에 이를 실행하기 위해 경영진이 어떤 전략을 가지고 있는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스타트업이 개척해 나가는 분야는 앞서 개척한 기업이 없는 경우가 많기에 참고할 만한 전략이 풍성하지 않습니다. 그중에서 기술 기반 스타트업 중 빠른 성장 속도로 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차지한 사례(아마존, 페이스북, Uber, AirBnB, 카카오톡, 쿠팡, 토스 등)가 있습니다. 이들의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블리츠 스케일링은 보편적인 성장 전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블리츠 스케일링 전략은 리드 호프먼이 쓴 동명의 책에 등장하는 개념입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엄청난 속도로 회사를 키워 압도적인 경쟁 우위를 선점하는 기업의 고도성장 전략"이라고 정의하죠. 투자를 상대적으로 잘 받고 J 커브를 그리기 좋은 시기에 블리츠 스케일링은 유효한 전략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겨울에는 적합하지 않은 전략일 수도 있죠. 실제로 올해 블리츠 스케일링 전략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시점에 겨울을 맞이한 회사 중에는 현금 흐름이 꼬여 어려움에 처한 스타트업들이 등장했습니다.
현재와 같은 겨울에는 성장 전략에 어떤 변화들이 있을까요?
우선, 블리츠 스케일링으로 독점적 입지를 확보할 수 있는 플레이어가 등장하기 어려운 환경이 되었습니다. 늘어난 유동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큰 규모로 투자 유치를 할 수 있었던 시기에는 경쟁사보다 빠르게 투자를 유치하고 마케팅 비용을 투입해 매출이나 사용자 수를 먼저 늘려 업계 1위를 선점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스타트업의 투자 규모가 줄고 폭발적인 성장을 끌어내기 어려워진 시기에는 남들보다 더 빠르게 보다, ‘더 오래 살아남는’ 플레이어가 시장을 독점/과점할 확률이 높아졌습니다.
다음으로 동종 업계 상장 기업의 가치가 하락했습니다. 이는 비상장 기업인 스타트업의 기업 가치 책정 기준이 매우 보수적으로 바뀌는데 영향을 미칩니다. 스타트업의 기업가치가 낮아졌다는 것은 경영권 확보를 위한 지분율을 유지하면서 투자를 받는 규모가 작아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로 연결되죠. 투자를 받을 수 있는 라운드 횟수와 라운드 별 투자 규모가 줄어들기 때문에 현금 흐름에 대한 관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특히, 이 겨울이 얼마나 길어질지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에 지속 가능한 성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성장 전략을 초기부터 찾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게 지속가능한 성장의 관점에서 요즘 같은 스타트업 혹한기를 버티는 세 가지 전략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Part 3 . 혹한기 스타트업의 생존 전략
1 ) 될놈 찾기 전략
혹한기에 스타트업은 자원을 아껴 효과적으로 쓰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자원을 아껴 쓰면서도 새로운 제품에 대한 가설과 새로운 기능에 대한 실험은 지속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장 모멘텀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스타트업에 자원이 풍부하던 시기에는 다소 비싸더라도 마케팅 비용을 투입하여 트래픽을 많이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제품 실험을 해서 비즈니스적 성과를 내는 제품 또는 기능을 찾아내는 전략을 썼습니다.
혹한기에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실패할 아이디어를 빠르고 효과적으로 걸러내는 것이 역설적으로 성공 확률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글 엔지니어링 디렉터 출신인 알베르토 사보이아는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이라는 책에서 “대부분의 신제품은 아무리 유능하게 실행해도 시장에서 실패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제대로 만드는 것 보다 ‘될 놈(Right it)’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죠. 즉, 아이디어의 실패 여부를 최소의 자원으로 미리 파악할 수 있으면, 성공하는 아이디어를 찾아낼 때까지 기회비용을 많이 아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실행할 수 있는 방법으로 ‘프리토타이핑 기법’을 소개합니다. ‘프리토타이핑’은 시제품을 출시하고 검증하는 ‘프로토타이핑’보다 한 단계 앞선 것으로 검증하고자 하는 핵심 가설을 최소한의 자원을 들여(심지어 시제품도 만들지 않고) 검증하는 기법입니다. 예를 들어 한 스타트업이 제품 기능으로 커뮤니티를 제공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을 가정해 보겠습니다. 제품 내에 커뮤니티 기능을 시제품 형태로 구현하여 론칭 한 후에 반응을 지켜보는 것은 ‘프로토타이핑(prototype)’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제품도 엄연한 제품입니다. 최소한의 기능 구현이 필요하기 때문에 개발을 위한 시간과 자원이 투입되죠. 이와 대비되는 방식으로 별도의 개발없이 오픈 카톡방을 활용해서 커뮤니티 기능이 작동할 것인지를 테스트해보는 것을 ‘프리토타이핑(pretotype)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혹한기에 자원이 부족한 시기에도 새로운 아이디어와 가설을 검증하는 작업은 계속되어야 하죠. 스타트업의 성장 단계에 적절하게 프리토타이핑(pretotype) 기법을 잘 활용한다면 실패할 가설이나 기능에 대한 빠른 검증을 통해 상당한 기회비용을 아낄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초기 스타트업일 경우 사업 아이템에 대한 큰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에 그 기회비용이 더 크게 다가올 수 있고요. 중후기 스타트업이라고 하더라도 새로운 기능 추가나 사업 모델 구체화를 위해 프리토타이핑(pretotype)을 잘 활용하면 충분히 비용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2 ) 현금 흐름에 기반한 투자 유치 전략
지난 몇 년간 많은 스타트업들은 매출, 거래액, 사용자 수(MAU, DAU) 등의 외형적인 성장에 초점을 맞춰 투자 유치 전략을 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스타트업에는 서로 투자를 하겠다고 투자가 몰리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그 사이 다른 투자사에게 투자기회를 뺏길까 빠른 속도로 큰 규모의 투자 유치를 결정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당장은 적자가 나더라도 투자금 유치를 통해 이를 감당하고 더 좋은 인재를 더 높은 몸값을 주고라도 데리고 와서 성장의 속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했고, 자금이 떨어지면 성장세를 기반으로 후속 투자를 받아 이를 충당하여 생존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현재와 같은 혹한기에 스타트업은 외형적인 성장보다 생존이 더 중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사업 아이템을 가지고 있어도 생존하지 못하면 사업을 영위하지 못하죠. 투자 유치를 위한 전략 수립의 경우에도 생존을 최우선으로 삼고 현금 흐름에 기반한 투자 유치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외형적인 성장 지표나 금액이 아닌 현재 보유하고 있는 현금과 이를 소진하는 속도를 면밀하게 검토해 런웨이를 타이트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런웨이가 충분히 남아 있는 기업에 투자를 하는 편이 유리하기 때문에 기업의 런웨이를 늘릴 수 있는 합법적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국내의 경우 미국 시장과 달리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집행하는 자금이 상대적으로 비중이 큰 편입니다. 각종 스타트업 대상 정부 지원 사업이나 R&D 과제를 통한 현금 확보는 기술 개발을 지속하면서 런웨이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신용보증기금이나 기술보증기금을 통해 변동비로 활용 가능한 자금을 확보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런웨이를 늘리기 위해 면밀한 검토를 기반으로 구조조정을 시행하는 것도 뼈아프지만 꼭 필요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스타트업의 스테이지에 따라 투자 유치 전략을 조금씩 다르게 가져가는 것이 중요한데요.
초기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지금과 같은 시기가 오히려 투자를 받기 좋은 시기일 수 있습니다. 아직 팀의 규모가 작아서 현금을 소진하는 속도가 작고 투자금 대비 런웨이 확보가 용이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과거 팀의 전문성이나 산업의 성장세만 보고 초기에 투자를 하던 때와 비교해 최근에는 초기 스타트업부터 구체적인 숫자나 지표를 요구하거나 검토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장 규모가 크진 않더라도 고객 1인당 평균 획득 비용, 구매 전환율, 객단가, 구독 유지율 등 비율로서 도출할 수 있는 지표들을 통해 투자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역량이 중요합니다.
중후기 스타트업의 경우, 좀 더 즉각적인 액션을 통해 현재 현금 소진 수준을 면밀히 분석하고 비용 효율을 높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불필요한 비용을 최대한 줄이고, 필요시 인력 재배치 또는 구조조정을 통해 고정비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재 외형적인 성장세에 대한 기대치가 산업 자체 또는 투자자 측 모두에서 다소 보수적으로 변했기 때문에 과거 세워둔 목표에 얽매이기 보다 현실 상황에 맞게 조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기업가치에 대한 현실 인식을 냉정하게 하고 지분율을 다소 내주더라도 필요한 현금을 최대한 많이 확보할 수 있는 투자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투자 심리 위축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재무 투자자(FI)보다는 CVC와 같은 전략 투자자(SI)를 통한 투자 유치도 지금 같은 시기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스타트업이 투자 전략을 보수적으로만 잡을 필요는 없습니다. 현금 창출 능력이 출중한 스타트업은 오히려 지금 같은 시기에 규모 있는 투자를 이끌어내기 상대적으로 유리할 수 있어 적극적인 투자 유치를 하여 진입장벽을 쌓는 것이 중요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1000억 원의 매출과 200억 원의 적자가 나는 스타트업 A와 200억 원의 매출과 20억 원의 이익이 나는 스타트업 B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전자에 투자가 몰렸다면 현재는 오히려 후자가 더 매력적일 수 있습니다. 특히 벤처캐피탈들이 결성해둔 펀드는 기한 내에 소진을 해야 하기에 좋은 사업 모델을 보유한 스타트업이 있다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 투자가 오히려 몰릴 수 있습니다.
3 ) Unit Economics
생존이 중요한 시기지만 스타트업은 여전히 성장을 이끌어내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과거 외형적인 성장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성장의 효율이 중요한 시기로 방향이 달라졌음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장의 효율’을 측정할 수 있는 방식으로는 Unit Economics를 중심으로 사업모델을 바라보는 것이 있습니다.
Unit Economics는 기업 전체 단위에서의 재무적 스크린샷이 아닌 최소 단위(Unit) 별 이익과 비용에 대한 경제적 분석으로 사업을 보는 방식입니다. 일반적으로 최소 단위를 한 명의 유료 고객이라고 한다면 1) 한 명의 유료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들어가는 평균 비용(CAC, Customer Acquiring Cost)과 2) 한 명의 유료 고객이 기업에 평생 가져다줄 수 있는 수익(LTV, Life Time Value)의 비율을 추적하는 것이죠. 요즘처럼 구독 경제가 활성화되고 디지털 채널을 통해 고객을 모집하는 시대에는 마케팅 비용 투입 시점과 이익 발생 시점 간의 간극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시점 단위가 아닌 고객(Unit) 단위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혹한기에 무리해서 외형적인 성장세를 높이기 보다 LTV와 CAC의 비율을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자원을 배치하는 것이 중요할 수 있습니다. 스타트업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과정과 같다고 생각해보면 이해가 조금 더 쉬울 것입니다. 과거 자금이 충분하던 시기에는 다량의 물을 부어 물이 빠져나가는 속도보다 붓는 속도가 더 빨라 독이 차오르는 상황이었습니다. 혹한기에는 무리하게 물을 붓기보다는 독에 난 구멍을 점차 메워가는 방향으로 자원을 투입하여 생존을 해나가다가 시장이 회복되는 시점에 다시 물을 대량으로 부어가는 전략을 취하는 것이죠.
따라서 전략 수립 과정에서 Unit Economics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들을 도출하고 우선순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LTV를 높이는 것은 제품을 바꾸고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측면이 커서 변화를 쉽게 주기 어렵기 때문에 CAC를 줄일 수 있는 전략을 검토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최근 퍼포먼스 마케팅 채널의 효율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무리한 광고비 지출 보다는 검색엔진최적화(SEO)와 같은 방식으로 차근차근 고객 접점을 만들어가고 저비용으로 의도(intent)가 명확한 소비자를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LTV의 경우 빠르게 개선하는 것이 어렵다고 하지만 앞서 소개드린 프리토타이핑 기법들을 통해 저비용으로 지속적으로 개선을 위한 활로를 찾는 것도 중요합니다.
오늘은 혹한기이지만 성장을 계속 만들어가야 하는 스타트업이 취해볼 수 있는 전략에 대하여 몇 가지 소개 드렸습니다. 각 스타트업에 처한 상황이 다르기에 위 방법들을 중 각자에게 적절한 방식을 선택적으로 잘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어려운 시기이지만 잘 버티고 생존한다면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의 시기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모든 스타트업계 종사자 분들께서 힘내시길 바랍니다.
Written by 김영인(가지랩 대표)
Edited by 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