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선 그로우앤베터 디자인 리드
오늘은 <스타트업 주니어 생존 가이드> 세미나의 이진선 프로페셔널 리더님과의 인터뷰를 전해드립니다. 스타트업이라는 세계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으신 주니어분들, 앞으로 어떻게 커리어를 설계하고 성장해야 할 지 막막하지 않으신가요? 이진선 리더님의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으시길 바랍니다.
1. 지금까지 일하면서 가장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지금 시점에 가장 대표적인 저의 포트폴리오는 ‘한달어스’를 공동 창업하고 운영한 것이에요. 디자이너로 일한 대부분의 시간을 타인의 기획을 디자인으로 구현하면서 보냈어요. 반면 한달어스는 제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서비스를 0 to 1 한 것이죠.
작업을 의뢰한 사람이 나 자신이라는 점은 생각보다 큰 차이였어요. 한달어스를 전후로 일을 대하는 관점이 달라졌고, 생산해내는 결과물이 달라졌고 또 사람들이 저를 대하는 태도 역시 많이 달라졌어요. 모르는 분들이 저를 먼저 알아보는 경우도 많아졌고요.
2. 한달어스를 시작한 계기가 궁금한데요.
디자이너로 일을 하는 동안 저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디자인을 잘하는 사람이 되는 거였어요. 그런데 10년 정도 일을 하고 나니까 어느 순간 목표가 사라진 느낌이 들었죠. 이후로 몇 년 동안 고민했어요. 나의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에 대해서요.
디자인 업무의 특성 중 하나는 프로세스의 끝에 위치한다는 거예요. 누군가 서비스 전략과 방향 그리고 이에 대한 세부 기획을 정하고나면 마지막에 가시화하는 것이 디자인의 역할이니까요. 시각적인 디자인을 넘어 하나의 서비스를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책임지는 일을 하고 싶다는 갈증이 생겼어요.
자연스럽게 언젠가는 사업을 하게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회사 밖에서 원하는 일을 하려면 영향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영향력이라는 것은 곧 인지도예요. 내가 얼마나 일을 잘하는지 사람이 알고 호감을 느끼게 해야 하죠. 그래서 브런치에서 온라인 글쓰기를 시작했어요.
저는 원래 말이 많은 편이 아니고 회식도 잘 가지 않는 내향형 인간이에요. 그렇지만 일에 진심인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일과 전문성을 주제로 연재를 하기 시작한 거죠. ‘내가 여기 있다. 공감하는 사람들은 여기로 와주면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썼어요.
글을 쓰면서 다양한 기회들이 찾아왔어요. 브런치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기도 하고, 책을 출간하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기회는 결국 사람이거든요. 온라인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만난 친구와 한 달 동안 온라인에 글을 쓰는 작은 커뮤니티를 만들었는데 그게 한달어스의 시작이었어요.
※ "사수 없이 일하며 성장하는 법" 시리즈 : 실력은 연차와 비례하지 않는다
3. 처음부터 비즈니스로 시작한 게 아니군요?
원래 함께 공동 창업한 친구가 자기 주변에 아는 사람 27명을 모아서 시작한 작은 프로젝트였어요. 한달어스는 30일 동안 매일 SNS에 글을 쓰는 커뮤니티예요. 27명이 1일 1글을 쓰면 거의 800여 개의 글이 온라인에 발행되는 거잖아요? 따로 홍보를 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퍼진 글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모였어요.
그러다 공동 창업한 친구의 지인으로부터 사업화하면 좋겠다는 조언을 듣게 되었고 반년 후 법인을 설립했어요. 막연히 언젠가는 사업을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기회가 갑자기 닥친 거죠. 제가 대표는 아니었지만 창업 멤버로서 사업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였어요. 저는 종종 온라인에 자기를 드러내야 한다는 말을 하는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에요. 예상하지 못한 기회가 찾아올 수 있으니까요.
처음엔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어요. 투자를 받는다는 개념도 없었고, 데모 데이나 스타트업 양성 재단이 있는 것도 몰랐고요. 아주 빠른 시간에 제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경험을 했는데 참 신기했어요. 디자인만 하던 사람이 커뮤니티 운영법을 고민하고, 교육 콘텐츠를 만들고, 전문가를 섭외하고, 투자 유치를 하는 등 다양한 일을 했죠. 비즈니스 측면에서 그리고 업무 역량 측면에서 모두 압축 성장한 시간이었어요.
4. 한달어스에서 운영한 프로그램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한달어스를 2년 동안 운영하면서 100여 개의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요. 그중 가장 애착이 가는 건 역시 ‘한달 자기발견'이에요. 한달어스 최초의 유료 프로그램이거든요. 자신을 돌아볼 수 있도록 가이드하는 질문을 30일 동안 매일 하나씩 제공하고, 참가자는 그에 대한 답을 글로 쓰는 프로그램인데요. 특이한 건 제가 먼저 질문에 답을 했다는 거예요. 그 답을 질문과 함께 참가자에게 전달했어요. 그래서 프로그램에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이 녹아있어요. 프로그램 참가자가 가족보다 저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정도였죠. (웃음)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깊게 생각하는 경험을 하지 못해요. 스스로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 모르거든요. 그래서 제가 오래전부터 자기 발견을 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질문들을 모아 공유해 드린 거예요.
지금까지 ‘한달 자기발견’에 참여한 사람이 300~400명 정도 되거든요. 그중에 자기발견을 계기로 이직을 하거나 창업한 분도 꽤 많아요. 그래서 프로그램 끝나고 따로 연락을 주시는 분들이 있었어요. 저와 참가자 모두에게 좋은 영향을 준 프로그램이라 애착이 가요. 가까운 시일 내에 새로운 버전의 자기발견 프로그램을 론칭할 예정이에요.
5. 진선 님께서 ‘자기 발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결정적인 계기는 목소리예요. 대학교 4학년 때 연축성 발성 장애라는 병에 걸려서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게 됐는데 당시엔 그게 디자이너로서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했어요.
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한 역량을 꼽으라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에요. 저는 디자이너에게 세 가지 차원의 커뮤니케이션이 있다고 생각해요. 바로 문자, 음성, 시각 커뮤니케이션이죠. 문자와 음성을 통해 프로젝트 유관자들과 협업하고, 결과물로는 사용자들과 시각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일이거든요.
저는 음성 커뮤니케이션에 약점을 가지고 있고 극복하기 쉽지 않았어요. 목소리 때문에 각종 병원을 찾아다녔고, 가수를 위한 발성 학원과 아나운서를 위한 스피치 학원도 갔었어요. 성악가를 찾아가기도 했고요. 안 해본 게 없지만 결국 병이 낫진 않았어요.
한편 일에 대한 회의감에 시달렸어요. 디자인은 사용자를 위한 것이라고 배웠는데, 에이전시 디자이너로 일을 해보니 사용자와의 접점은 없고 오히려 의뢰인의 사고 수준이나 취향에 따른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었거든요. 주니어 시절엔 디자인 실력이 부족했으니 역량 개발이 더딘 것에 대한 괴로움도 있었고요.
극복할 수 없는 핸디캡, 부족한 역량, 가치관의 불일치 등 여러 이유로 점차 몸도 마음도 아픈 사람이 되었어요. 결국 4년 동안 다닌 첫 직장을 포기하고 퇴사했어요. 그 후 1년 정도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는 것이 맞을까’에 대해 참 많이 고민했어요. 돌아보면 그때가 처음으로 자기 발견을 한 시기였어요.
6. 힘든 시간이었을 텐데, 그 시간 동안 어떤 고민들을 했는지 궁금해요.
결론은 단지 목소리가 안 나온다고 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안 할 이유가 없다는 거였어요. 저는 문자와 시각 커뮤니케이션을 잘해보자고 생각했어요. 다시 디자인을 시작할 수 있었던 건 핸디캡은 그대로였어도 마음가짐이 달라졌기 때문이에요. 면접에서 불이익을 받는 등 어려운 일은 계속되었지만 저는 디자인을 포기하지 않았어요.
부족한 게 뭔지 알게 된 만큼 잘하는 게 뭔지도 확실히 알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글을 쓸 수 있고, 상황 파악과 정리를 잘하거든요. 그래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무조건 남들보다 먼저 정리를 했어요. 보통 킥오프 할 때 많은 경우 책임지기를 싫어하고 일을 미루거든요.
그럴때 저는 회의록을 정리해서 공유했어요. 이게 진짜 노하우인데, 정리하는 사람이 일의 주도권을 갖는다는 개인적인 믿음이 있거든요. 회의록을 정리하면 사람들이 궁금한 점이 생겼을 때 질문을 해요. 대답하는 사람이 관계상 우위에 서죠. 자연스레 담당자가 되고 프로젝트를 주도하게 되는 거예요.
이제는 관계를 시작할 때 제 목소리가 원래 이렇다고 설명을 해요. 약점을 투명하게 공개할수록 믿음이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됐거든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 순간에는 제가 더 이상 커뮤니케이션에 약하지 않다는 확신을 갖게 됐죠.
7. 지금까지 한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한 명의 주니어 디자이너 성장담이네요. 이번 <스타트업 주니어 생존 가이드> 세미나에서 주니어들의 고민을 듣는 시간을 갖게 될텐데요.
제가 고민했었던 것을 많은 스타트업 주니어분들이 고민하고 있을 거예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뭔가를 고민하고 생각한다 말하면서도 ‘진짜’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어떻게 성장해야 할까?’, ‘일을 잘한다는 것은 뭘까?’ 생각할 때 대상을 뭉뚱그려요. 성장이 뭔지, 일이 뭔지, 전문성은 뭘 의미하는지 더 깊게 구조화하기 어려운 거예요.
이 때 필요한 능력이 메타 인지력인데요. 한발 떨어져서 나를 바라보는 제3의 눈을 키우는 거예요. 이런 능력은 훈련을 통해서 갈고닦을 수 있는데 사실 직장에서 누구도 이런 걸 알려주진 않죠.
이 세미나가 필요하겠다고 생각한 이유도 그런 거예요. 흔히들 스타트업에 사수가 없다고 하는데 사실 이런 걸 말해주는 사수는 스타트업만이 아니라 대기업에도 없거든요. 그래서 이 세미나를 통해서 제가 지금까지 성장하면서 겪었던 사고의 과정이나 고민을 공유하고 싶어요.
8. 스타트업 주니어가 특별히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스타트업을 반복과 확장이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는 임시 조직이라고 정의해요. 현상 유지가 아니라 시장을 혁신할 정도로 큰 성장을 목표로 조직된 팀이라는 거죠. 스타트업씬에서 자주 말하는 J커브를 그린다는 건 10년, 20년 후가 아니라 당장 1년 안에 얼마나 많은 가능성과 성과를 보여줄 수 있느냐가 관건이에요. 스타트업의 기본 속성이고 존재 이유죠.
그러니 자연스레 팀원 개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업무 범위도 넓고 속도감도 달라요. 이를 부족한 자원으로 해내야 하죠. 그러니 스타트업에서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성장시켜야 하는 경험을 훨씬 더 자주, 많이 겪게 되는 거죠.
9. 스타트업에서 일하면서 얻을 수 있는 가치나 의미는 무엇일까요?
같은 수준으로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일의 전후 맥락을 알아야 해요. 또한 나의 일이 조직 차원에서 어느 위치에 있고 어느 정도의 중요성을 갖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어야 하고요. 보통의 회사들은 개인에게 정보 접근 권한을 제한해요. 주어진 일에 대해서만 알기 때문에 아무래도 시야가 좁아질 수 밖에 없어요. 스타트업은 상대적으로 정보 접근성이 높아요. 빠르게 성장해야 하는 특성 때문에 조직 안에서 모두가 투명하게 정보를 공유하고 개인에게 큰 권한과 책임을 주니까요.
스타트업에서 성장 가능성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구성원 개개인의 기여가 절대적이에요. 성장을 목적으로 한 조직이기 때문에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을 확률이 높아요. 그러니 나도 열심히 할 수밖에 없죠. 개인이 단기간에 압축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스타트업에서 일하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가치라고 생각해요.
10. 진선 님께서 그로우앤베터에 합류한 이유도 같은 맥락인가요?
그렇죠. 그로우앤베터가 최근에 Seed 투자를 받았는데 제 단기적인 목표는 우리가 시리즈 A 스테이지로 성장하는데 기여하는 거예요.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는 과정 중에 조직 차원에서 많은 혼란이 있을 텐데 저는 바로 그 경험을 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해본 적 없는 상황을 겪으면서 분명 저는 한 단계 성장하게 될 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주니어들이 최대한 젊을 때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에서 많은 경험을 쌓는 게 좋다는 생각을 해요. 대표와 직접 소통하면서 조직 관점에서 비즈니스를 학습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거든요. 저도 그로우앤베터에 합류하면서 대표인 벨라에게 많은 걸 배우고 있어요. 돈을 주고도 들을 수 없는 내용을 일상에서 듣고 학습할 수 있거든요. 이런 이점을 잘 활용하면 주니어도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11. 감사합니다. 끝으로 <스타트업 주니어 생존 가이드>를 기대하시는 분들께 한마디 부탁드릴게요.
주니어를 대상으로 하는 세미나가 많은데 저는 자신 있어요. 개론적인 얘기만 하고 끝나지 않을 거예요. 제가 직접 경험한 살아 있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유용한 인사이트를 공유해 드릴게요!